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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CEO열전

<그리닷> 정인보(5기) 대표

 

형형색색 픽셀로 완성되는 나만의 그림

 

  그림은 선과 선이 만나 완성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보다 근본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점()이다. 수 없이 많은 점들의 연속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선을 이루는 것이다. 사업 역시 매일 반복되는 작은 습관과 노력을 통해 조금씩 성공의 형태를 갖춰 나간다. <그리닷>의 정인보 대표 역시 1년여 간 창업을 위한 점을 찍어 왔다. 주변의 압박, 자금 부족, 제작 공정의 난항 등 스타트업 특유의 어려움이 반복되는 순간에도 자신만의 점찍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이제 픽셀아트 완구 그리닷을 통해 성공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대학에서 구조공학을 공부하고 건축분야 회사에 취직해 일을 했었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구조물의 응력이나 힘의 분포 등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일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보던 게 점과 선이었다. 구조물의 얼개를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확장해가며 그리다 보니 점()으로 모든 사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복잡한 설계도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러다 점이라는 개념을 우리 일상의 여러 분야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교육프로그램이나 작업치료 등에 사용될 무언가를 개발해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점묘법을 활용한 디자인의 휴대폰 케이스를 제작하다, 교구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색상의 점 블록을 만들어 아이들이 가지고 놀거나 그림을 만드는 제품이 떠올랐다. 아이템 특성 상 몇 년 전부터 커지고 있는 키덜트 분야에서도 활용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템 하나만 가지고 창업하기엔 모르는 게 많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업모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시간도 필요했다. 1년 정도 창업을 준비했다. 대학 창업 교육을 다녔다. 액셀러레이터 경진대회나 창업 캠프도 참석하면서 사업 방향을 다듬었다. 창업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 분들도 많았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업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제품 디자인은 직접 한 건가

 

처음에는 아이디어뿐이었다. 디자인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 설계 프로그램으로 그리는 그림은 수학적 개념일 뿐,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창업 준비를 하면서 포토샵, 일러스트 등 디자인 툴을 다루는 법도 공부했다. 개념을 형상화하는 과정도 익히고, 후에 외주를 주더라도 디자인 과정을 아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문적인 디자인은 외주를 주고, 급하게 그림이 필요할 때는 직접 만들기도 한다.

 

<그리닷>의 로고는 직접 만들었다. ‘그리닷그림을 그린다는 의미와 함께, 제품의 타공판을 뜻하는 그리드와 픽셀 블록 을 조합한 말이다. 아이템의 의미와 성질을 잘 전달할 그림을 고민하다 점으로 이뤄진 말풍선 형태의 로고를 만들었다. 만화에서 보면 말풍선을 통해 대사는 물론 캐릭터의 속마음까지 표현하지 않나. 많은 분들이 그리닷을 통해 자신만의 그림과 이야기를 만들어 갔으면 했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회사를 다니며 조금씩 모았던 돈을 1년 간 창업을 준비하며 사용했었다. 사업을 시작도 못해보고 접을 뻔 했다. 제품 제작비도 없었으니까. 정부에서 진행하는 창업지원 사업을 신청해 심사를 받았는데,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떨어졌다. 창업선도대학에 지원하면서 여기서 떨어지면 욕심 부리지 말고 직장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을 먹었다. 다행이 합격을 해서 지원금을 받고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었다. 창업 준비기간 동안 주변의 염려가 심리적으로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아마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다른 대표들도 공통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금형이나 사출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면서 완구 생산 업체를 찾았다. 알고 보니 부산에 완구를 생산하는 공장이 꽤 있었다. 유명한 국산 블록 장난감 브랜드도 원래 부산에서 제작을 했었다고 사실도 그때 알았다. 목업(mockup)을 들고 금형공장을 찾아다니며 생산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닷은 아이들의 치발기(이가 나는 시기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장난감)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TPE로 만들어진다. 인체에 무해하고 말랑말랑한 소재다. 만지는 느낌이나 사용자들의 소근육 발달에 좋아 선택한 소재였는데, 문제는 사출이 너무 어려웠다. 재질이 너무 부드럽다보니 금형 틀에서 새어 나오거나 틀에 들러붙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장 측에서는 제품의 경도를 높여야한다고 계속 말했는데, 제품 완성도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사출공장 쪽에서 제품 제작을 중지했다. 당시 제작을 맡긴 금형공장과 사출공장이 서로 형제분이었는데, 사출공장을 옮기려고 하니 금형공장 측에서도 제작을 못해주겠다고 했었다. 제작과정에 실패를 많이 해 이미 제작단가도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이었다. 수소문 끝에 겨우 새로운 업체를 만나서 지금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10개월 정도 걸렸다. 지금 와서 보면 당시 제품의 완성도를 고집한 것이 잘한 일 같다. 소비자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도 을 만질 때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감촉이다.

 

제품 판매는 어떻게 하고 있나

 

막상 제품이 나와도 유통은 쉽지 않았다. 일단은 인적 인프라를 활용했다. 우선 여러 박람회 등에 참석하면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최근 교구시장에 입체 블록 제품이 많이 출시되는데, 반대로 평면적 형태의 제품을 제시하니 오히려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다. 아이템 기획 단계에서 을 조립해 쌓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의 형태로 제작한 것이 주효했다. 국내의 경우 특판 계약을 맺고 다른 업체가 판매 대행을 진행 중이다. 혼자 욕심 부리지 않고 전국 지역을 나눠 지사 개념으로 유통할 생각이다. 해외 수출도 코트라의 수출지원 사업을 통해 베트남, 홍콩, 미국 등지에 샘플을 보내고 있다. 좋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앞으로 어떤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은지

 

레고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레고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넘어 여러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제품이다. 레고가 입체 블록 장난감의 대명사라면 우리는 평면 오락 콘텐츠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고 싶다. 지금의 십자수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다. 디자인도 더 신경을 쓸 생각이다. 올 가을 경에는 디자이너 한 분을 채용할 생각이다. 같은 단어라도 디자이너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로 표현된다. 학벌이나 스킬을 떠나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사업을 하면서 배우는 점이 있다. 확신은 검증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확신이 서면, 다음은 버티기의 문제다. 버티고 견디면 언젠가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제 경우엔 창업 준비기간이 긴 편이었는데 스스로 세운 기준에 도달한 뒤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래야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윤을 좇아 타협하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브랜드를 탄탄히 구축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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