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편에 주목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이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는 요즘, 일상의 불편함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혁신을 꿈꾸는 이가 있다. <(주)샤픈고트>의 권익환 대표는 주차 공간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른바 ‘문콕’ 사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차량 도어 가드 아이템으로 창업에 나섰다. 수년간의 개발 노력 끝에 지난 해 출시된 첫 제품 ‘뎁스(DEPS)’는 현재 국내외 시장에서 사업성을 인정받고 있다. 독일어로 ‘창조의 신’을 뜻하는 샤픈고트의 이름처럼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싶다는 권 대표의 다음 발걸음이 궁금하다.
‘차량 도어 프로텍터’라는 독특한 아이템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창업 전에 수입자동차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했었다. 당시 고객 차량을 정기 점검해 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차의 성능에는 만족하던 고객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점을 발견했다. 마트나 주차장에서 옆 차에 문을 긁히는 일이었다. 새 차가 출고되면 차문에 스펀지가 붙어서 나오지만, 옆 차가 자신의 차에 닿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게다가 스펀지의 접착제는 시간이 지나면 차량 도색을 훼손시키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았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을 만든다면 시장성이 있다고 봤다.
원래 창업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 역시 창업까지 오는 데에는 남다른 이력이 있었다. 고교 졸업 후 외국어대학에 입학했었는데, IMF로 인해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등록금이 없어 학교를 나와 해병대를 갔다. 전역 후 집에 와보니 전기세를 못 내는 형편이었다. 할머니께서 겨울옷을 사 입으라고 쥐어 준 몇 십만 원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당시 호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우리나라의 바텐더 세계 챔피언에게 일을 배우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고시원에서 살면서 호텔 일을 배웠다. 호텔은 경력 우선이다. 유학을 다녀와도 웨이터부터 시작한다. 경력을 쌓으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당시 국내에 처음 생긴 사이버 대학을 다녔다. 아침 6시부터 수업을 듣고 오후에 일을 했다. 일을 마치면 새벽까지 놀이터에서 칵테일 기술을 연습하곤 했다. 링거를 맞아가면서 일하고 공부해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제가 국내 최초 사이버 대학 졸업생이다.
호텔에서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이민을 준비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없던 일이 되면서 호텔 일을 그만두고, 한 금융기관의 파견직으로 취직했다. 취업 후 보니 금융기관의 현금 운송 시스템에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상부에 개선안을 제안했더니, 파견직이 맡은 일은 안 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무시하더라. 그러다가 본사의 마케팅 팀장 한 분이 제안서를 발견하고 저를 계약직으로 불렀다. 그때 처음 마케팅을 배웠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정말 과감하게 일했다.
당시 악성 채무자들을 위한 문화 마케팅을 기획했는데, 주변에서 빚쟁이들한테 무슨 문화냐고 하더라. 아버지께서 부도를 겪어 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갚을 의지 있는 사람들을 추려 마케팅을 진행해 성공을 거뒀다. 기업 이미지도 좋아졌고. 전산팀이 맡고 있던 홈페이지 관리도 마케팅 쪽으로 돌렸다. 복잡한 대출 신청 과정도 사용자 편의성을 중심으로 개선했다. 고객들의 반응이 오면서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당시 미국에서 MBA를 거친 새로운 마케팅 팀장이 공부를 권하더라. 집안의 채무를 갚아야 해서 학비가 없었음에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그야말로 엘리트들만 오는 곳이었고 도저히 붙을 수가 없었다. 면접에서 제 상황을 솔직히 말하고 ‘저 같이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이들도 꿈을 펼치게 도와 달라’고 얘기했다. 심사위원 한 분이 좋게 보셨는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저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동기들 사이에서 열심히 공부해 최연소로 졸업했다.
이후 은행을 나와 광고회사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활이 안정되고 나니, 스스로 건방져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부하 직원으로 대하다 보니 도전보다는 사내 정치를 하게 되더라. 스스로에게 실망하면서 점점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 서울에 와서 외로울 때 미술관을 가곤 했다. 그림도 좋지만 적막한 공간에 울리는 사람들 발소리가 좋았다. 나중에는 혼자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시간을 내서 여행도 다녔다. 당시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15만 명 정도가 블로그를 찾아 왔다. 그러다보니 호텔이나 펜션에서 리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지금으로 치면 파워블로거다.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각지의 호텔을 다니면서 컨설팅을 해줬다. 그러다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서 대표이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이 서른에 금수저도 아닌 제가 객실 120개가 넘는 리조트를 맡은 거다. 그런데 리조트를 들어가 보니 3년 간 적자에 투자자, 채권자 등이 얽혀 재무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때까지 모아둔 제 돈을 넣어가며 9개월 만에 정상화를 시켰다. 하고 싶었던 호텔 일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던 찰나, 리조트 측에서 기존의 5년 계약을 1년으로 바꾸자고 나왔다. 궤도에 올려놓으니 나가라는 말이었다. 못 나간다고 버티다 리조트가 동원한 폭력배들에게 협박과 감금까지 당했다. 지역 공권력도 소용없었다. 당시 세상에 큰 상처를 받았다.
빈털터리로 충북으로 내려가 반년을 백수처럼 살았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서른 넘어 그런 상황이 되니 허탈했다.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지인들과 광안리 해변에 앉아 이야기를 하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척에게 도움을 요청해 당감동에 작은 사무실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돈이 없어 직원들이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가는 경우도 있었다. 저도 틈틈이 강의를 나가 돈을 마련해 회사를 운영했다. 길에 버려진 간판을 주워 회의할 때 쓰면서, 저희들끼리 2년 안에 센텀으로 사무실을 옮기자 얘기했다. 딱 2년 후에 센텀으로 이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창업을 했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제조업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디자인을 하면 공장이 그대로 만들어 주는 줄만 알았다. 근데 저희 디자인이 원가가 엄청나게 높다. 부품이 많아 금형도 까다롭고, 조립 인건비도 많이 들었다. 게다가 차량 외부에 부착되는 제품이라 악천후 등의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도 변질이 없어야 했다. 처음 설계 후 제조공장 측과 디자인에 대해 대립되는 의견을 조율하고, 소재를 변경하고 개선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전국을 돌며 금형공장을 7번이나 옮겨 돈도 정말 많이 썼다. 만신창이가 된 끝에 겨우 제품이 나왔다.
판매 전략을 어떻게 잡았는지
창업 후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디자이너께 디자인을 부탁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자꾸 비서가 반려하길래, 아예 택배박스에 써서 보냈다. 창업기업 첫 제품을 이노디자인이 디자인했다고 하니까, 여러 군데에서 관심을 보였다. 당시 디자인비로 창업지원금을 다 썼다. 시제품 제작에 홍보물, 운영비는 어떻게 할 거냐고 주변에서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냉정히 말해 창업기업 제품을 제대로 안 만들면 누가 쉽게 사 주겠나. 저희는 프리미엄을 지향했다. 제품 소재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비닐이나 박스까지 철저히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워낙 까다롭게 구니 제조공장에서 대기업도 이렇게 안 한다고 불평하더라. 고객 응대 서비스도 벤츠보다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신 블랙컨슈머를 강력하게 대응한다. 4년 동안 판매하면서 악플이 달리지 않은 걸 보면 저도 기적 같다.
샤픈고트가 구상하고 있는 다음 아이템은 무엇인가
수년 간 고생하고 나니 노하우가 생겼다. 이제는 제품 구상과 개발까지 한 달이면 가능하다. 우선 ‘뎁스2’를 준비 중이다. 새 제품은 차량에 위험이 감지되면 경고음이 나간다. 차량에 충격을 가해지면 스마트폰과 연동, 충격 정보가 수집된다. 세계 시장은 차량 도난 파손 방지 장치를 제작해 공략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주차장에서 손쉽게 계산 가능한 결제 시스템도 장착할 예정이다.
고속도로에서 사고 발생 시 2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도 준비 중이다. 차량에 설치된 키트가 사고 후에 연기와 불빛 신호를 내보내 뒤차들이 사고를 인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운전자 의식을 잃은 경우, 자동으로 경찰서, 소방서에 사고 사실과 위치를 전송하게 된다. 여기에 드론 장착형 소화기와 여행용 캐리어 프로텍터 등도 개발 중이다.
<(주)샤픈고트>는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트렌디 아이템 제조기업을 표방한다. 기존의 기술 제품을 융합하고, 소비자의 불편을 파악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는 것이다. 창업기업은 하나만 집중해야한다는 주변의 반응도 있는데, 우리가 1년 동안 만든 제품을 중국에서는 1주일 만에 똑같이 만든다. 원가는 비교도 안 된다. 시장의 빠른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선도해야 한다. <(주)샤픈고트>에 아이디어와 노하우는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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