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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CEO열전

<까이에(Cahiers)> 김아영(2기) 대표


내 꿈의 노트, 고객과 함께 적어가고 싶다


  서양화를 전공한 김아영 대표가 패션에 뛰어든 것은 서른 즈음이었다. 프랑스로 미술 유학을 떠났던 그녀에게 큐레이터 공부는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았다. 스물아홉에 입학한 디자인 스쿨, 주변의 동기들은 스물 남짓이었다. 김 대표는 이를 악물었다. 불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낯선 나라의 나이 어린 동기들 사이에서 뒤늦은 학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스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그녀는 수석졸업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그녀가 다니던 학교는 디올, 입생로랑 등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의상조합이 설립한 곳으로 수석졸업생은 조합 업체에서 곧장 채용해가는 관례가 있었다. 그녀 역시 유명브랜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장밋빛 현실은 펼쳐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패션업계는 그녀의 생각처럼 자유롭고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볼펜 던지고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시간, 은근한 인종차별을 이겨내며 2년을 버틴 그녀는 함께 프랑스에서 영화공부를 하던 남편의 상황과 맞물려 한국으로 돌아왔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프랑스에서 일을 하며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30대의 나이에 한국에 들어오니 취업도 쉽지 않았다. 지인 소개로 강의를 나가면서도 옷을 만들고 싶었다. 국내에서 패션 공부를 한 게 아니다보니 국내 생산 시스템도 낯설고 인프라도 없어 힘들었다. 그때 부산경제진흥원이 계기를 줬다. 부산패션위크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브랜드 론칭의 기회를 얻었다. ‘후즈벨이라는 브랜드였다. 우리나라 여성복을 온라인으로 프랑스에 판매했다. 청년창업지원사업도 후즈벨로 이수했었다.


창업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완전히 맨땅에서 시작한 셈이었다. 국내의 의류유통 시스템도 모르고 시장도 몰랐다. 옷을 어디서 어떻게 만드는 지도 몰랐으니까. 여기저기 발로 뛰었다. 진시장을 많이 다녔는데, 내가 초보 같았는지 견적을 몇 배씩 불렀다. 그때 사기도 많이 당하고 돈도 엄청나게 날렸다. 아직까지 빚이 많아 고민이다. 운 좋게 론칭 때부터 바로 수출을 시작하고, 주변에서 많이 사주시고 하는데도 이런 식으로 사업이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경영자와 디자이너 사이에서의 딜레마가 있다. <까이에> 옷은 시크함과 여성스러움을 추구한다. 나의 취향을 갖고 디자인한 옷에 주변에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아이템을 만드는데, 고객들의 반응을 듣다 보면 이런 옷이 잘 팔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매출 높은 브랜드의 옷을 보며 대중적인 스타일로 제작하면 어느 순간 오히려 매출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매출에 신경 쓰니까 스트레스 때문에 일이 안 됐다. 나만의 목표와 시각을 바로 잡고 걸어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감성은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억지로 바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독특한 옷을 좋아했고. ‘까이에 풍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당장의 매출도 절실하지만 브랜드만의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싶다. 꿈은 크다. 부산에서 시작했지만 파리 컬렉션을 목표로 한다.

 

사업을 시작하며 사기를 당한 여파가 커서 자금 조달이 힘든 점도 있다. 창업센터에서 만난 동료 분들도 비슷하더라. 재벌집 자식이 아닌 이상 똑같은 문제라고 본다. 여러 기관에서 대출을 해주지만 운영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브랜드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프랑스 말로 메모장, 작가의 작업노트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나만의 노트에 적힌 아이디어, 그 안에 섬세한 디테일, 여성적 감성, 고급스러움을 제안하고 싶었다. 거기에 소비자들의 개성이 더해져서 새로운 감성의 결과물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옷을 만들 때 마감에 신경을 쓴다.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디테일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내 디자인이 과해보이는 디자인이라고 했었는데, 입어보면 생각보다 과하지 않다. 나는 사실 남들에게 내 옷을 입히는 걸 좋아한다. 거기에서 디자이너로서 만족감을 느낀다. 누군가 나의 옷을 입고 스타일리시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내가 일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했다. 창작하는 사람은 약간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면이 있다. 나 역시 창업 전에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업을 하니까 그럴 수가 없더라. 경영 교육에 마케팅, 재무에 시간이 모자란다. 얼마 전에야 비로소 직원이 출근했다. 소원이 있다면 디자인 일만 하는 것이다.

 

판로를 개척하면서 부산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말 감사하다. 디자인센터에서 유통라인을 뚫는 데 도움을 많이 줬었다. 신생브랜드가 쉽게 백화점에 들어갈 수 있었겠나. 첫 수출도 부산섬유연합에서 지원해 주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왔다. 얼마 전 서울 쪽으로 입점을 하게 됐다. 잘되면 압구정 쪽도 가능할 것 같다. 부산은 신생 브랜드에 대한 장벽이 높다. 가격대가 다소 높다보니 이름값이 없으면 승부가 안 된다. 앞으로 소비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브랜드로의 성장을 목표하고 있다.


다른 창업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전하고 멀리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부산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치고 나이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절박했다. 주변의 나이 어린 디자이너에게 박람회를 권하면 준비가 안 됐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 꿈을 크게 가지고, 열정이 필요한 것 같다. 욕심을 부릴 필요가 있다.

 

또 디자이너에 대한 환상이 있다 보니, 현장을 처음 겪는 친구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을 너무 빨리 포기하곤 한다. 당장 힘드니까 그만 두는 거다. 브랜드를 같이 키우고 잘 배워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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