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CEO열전2016.11.28 15:33



경제적 가격과 고품질의 3D 프린터로 메이커들을 사로잡는다

 

강지훈, 윤정록 공동대표가 이끄는 <포머스팜>은 지난 2013년 창업 이후 국내 3D 프린터 개발, 제작 전문기업으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강지훈, 윤정록 두 사람은 각각 부산 기장과 서울에서 개발 및 제조, 유통과 관리를 맡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강지훈 대표와의 인터뷰.

 


창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예전부터 만드는 걸 좋아해서 건축과를 전공하고 목공일을 했었다. 한동안 무형문화재 선생님 밑에서 전통가구를 만드는 일도 배웠는데, 선생님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일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다 잠시 스위스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때 우연히 길을 가는데 우드페어를 하고 있더라. 그 때 나무로 각종 형상을 만들 수 있는 기계, CNC(컴퓨터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알게 됐다. 그때 나무 깎는 기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손재주가 많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이 뭔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3D 프린터 제작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함께 창업한 윤정록 대표는 대학 동아리 선배였는데, 학창시절부터 사업을 하게 되면 같이 해보자는 말을 많이 나눴던 사이였다. 약속대로 함께 시작한 거다.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기계를 직접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대부분의 3D 프린터 제조사도 마찬가지일 거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걸 한두 번 만들어 보면 의외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당시에는 국내에 3D 프린터 관련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포털에 검색해 봐도 게시글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해외에선 관련 커뮤니티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을 무렵이라 해외 기기를 구입해서 분해하고 재조립하며 구조를 익혔다. 소프트웨어 부분은 해외포럼들을 보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부품 제작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처음에는 그냥 베어링 만들어주는 곳에 가서 문의하니 설계도대로 만들어준다고 해 믿고 맡겼다. 공장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부품으로 제품을 조립하니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플라스틱 부품을 알루미늄 재질로 다 바꿨다. 초기 금형 비용으로 수백만 원이 나갔는데 전부 쓸 수 없게 된 경우도 있었고, 1년 동안 믿고 거래를 했었는데 알고 보니 터무니없이비싼 가격이었던 곳도 있었다. 다 시행착오라고 생각한다.

 

국내 3D 프린터 업계에선 1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 당시에는 국내 포털에 3D 프린팅이라고 검색을 하면 100개 중 90개는 당시 우리가 만든 카페글이었을 정도였고 10개 정도는 관심 많은 사람이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수준의 글이었다. 사실 처음 창업을 할 때는 제조보다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메이커스커뮤니티를 꿈꿨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화에서 시기상조였는지 커뮤니티 형성이 어려웠다.

 

건축과를 다닐 당시 여러산업용 장비로 제작된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회사를 눈여겨봤었다. 졸업 후 네덜란드에 있던 그 회사를 찾아갔다. CEO를 만나서 한국에도 당신들이 하고 있는 플랫폼을 시작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근데 그 CEO도 이미 시장조사 차 서울에 온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쪽에서 한국은 시장 가능성도 적고 사람들도 오픈 마인드가 아니라면서 내 제안에 대해 아주 낮은 수준의 역제안이 왔다. 나는 하루 종일 관련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그쪽은 일회성 행사로 진행하려고 한 거다. 그래서 일이 잘 성사되지 않았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굉장히 힘들었다. 창업사관학교에서 있을 때 하루에 2시간, 3시간만 자면서 2년 간 했었다. 건물을 관리하는 분이 잠 좀 자라고 할 정도였다. 해외 포럼을 보고 영어로 다 읽고 해외에 글 써서 보내고, 기계를 만드는 과정도 있다 보니 힘들었다. 특히 창업 초기에 우리는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같이 성장하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다들 경험이 부족하니까 재고 관리도 허술한 경우가 있었고, 직원들을 뽑는데도 애를 먹었다. 지금은 나름 체계를 잡아가고 있어 괜찮다.

 

이번에 출시된 올모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2013년 말부터 꾸준히 제품을 출시해 왔는데, 이번이 5번째 제품이다. '올모(OLMO)'는 스페인어로 느티나무라는 뜻이다. 마을 어귀 등지를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나. 우리 제품도 고객들에게 항상 자리를 지키며 신뢰받는 제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름 지었다. 보통 3D 프린터로 제품을 만들 때, 건축에 뼈대가 필요하듯 출력물에 지지대 역할을 하는 서포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품을 출력하는 소재와 지지대를 출력하는 소재가 같을 경우 두 출력물이 얽혀 제품을 출력한 후에 지지대를 뺄 수가 없다. 싱글 노즐 같은 경우는 소재가 같다 보니 빼기가 힘들다. 그래서 서포트 전용 재료를 넣어 후에 제거가 쉽게끔 듀얼 노즐을 사용한다. 그러나 듀얼 노즐은 사용할 때 안 쓰는 노즐에서 묻어나오는 잔존물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우리 제품은 싱글 노즐에서 두 가지 재료가 순차적으로 출력되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 두 가지 재료를 넣다보니 다른 색 재료를 활용해 제품에 그러데이션 효과도 줄 수 있다.

 

이런 ‘2way 1nozzle’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일반 방식의 노즐 제조 방법으로는 제작이 어려워 기존에 비해 20배 가까운 비용을 들여 벨기에의 메탈 3D 프린팅을 이용했다. 여기에 제품 크기에 대비해 최대 사이즈의 출력물이 프린트 가능하다. 풀컬러 터치 LCD, 공기 정화 필터 등도 경쟁력을 갖춘 부분이다. 우리 제품을 이용하면 해외 고가 제품의 10분의 1 수준의 가격으로 높은 수준의 출력물을 만날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 판매중인데, 구매자들 반응은 어떤가?


일단 다른 프린터와 워낙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좋은 반응들이 있다. 우리는 해외 제품에 비해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고 고객 응대도 확실하다. 사용자가 불편함을 표시하면 기계적인 문제인지 모델링 문제인지 혹은 소프트웨어 문제인지 파악해 바로 응대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직접 나가서 점검을 진행하기도 한다. AS는 보통 서울에서 응대를 하는데, 한번은 세세한 것까지 딴죽을 거는 고객이 있어 내가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고객이 늘 늦은 밤에, 새벽 한 시 정도에 전화해서 나랑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기계 자체에 클레임을 걸었던 고객이 1년 정도 계속 얘기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기계를 잘 쓸 수 있는지 의견을 나누게 됐다. 나중에는 친해져서 출장을 다니다 사는 곳에 들르는 사이가 됐다.

 




제품의 특성상 해외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할 것 같은데


해외제품은 가격대가 다양하고 모델에 따라 좋은 제품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국내에 들어오는 해외제품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일단 해외에서 100만 원에 판매되는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면 300만 원이 된다. 재료는 더 심하다. 출력물을 뽑을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코일의 경우 우리 제품의 2배 이상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또 해외제품의 경우에는 보통 제품 보증 기간이 6개월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센서 하나를 바꿔도 100만 원을 달라고 한다. 우리는 센서를 바꾸는데 공임비를 포함해도 몇 만 원 되지 않는다. 사실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는 일이라 부품비만 받고 택배로 보낼 때도 있다.

 

국내 소규모 회사의 경우 문을 닫는 사례가 많아 소비자들이 AS를 위해 해외제품을 사시는데 우리로서는 기술력이 뛰어난 3D 프린터 회사 중에 포머스팜과 같은 한국기업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한다. 아직까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기업들이 세계 3D 프린터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들과 당당히 경쟁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자신이 맡은 일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시간에 끝나 각자 삶을 살 수 있는 회사가 가장 좋다고 본다. 그러려면 매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안정화되어야 한다. ‘가족적인 회사를 추구하는 것보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결혼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면서는 욕심이 많기도 했다. 이런저런 모습의 회사를 만들어가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점점 현실이랑 부딪치면서 변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지금은 회사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가족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서로 요구할 걸 말 못하는 것보다 자기 임무를 명확하게 해서 논란거리가 안 생기게 하고, 회사에서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만들고 싶다. 일이 끝나고 집에 갔을 때 모두가 아무 잡념 없이 가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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