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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CEO열전

사부작놀이협동조합 정희권(7기) 대표

 

한국만의 색깔이 담긴 보드게임 콘텐츠를 꿈꾸다

 

삼삼오오 모여 주사위를 던지거나 원반을 돌린다. 단단한 보드판 위에서 움직이는 말들은 게임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화려한 그림과 캐릭터, 무엇보다 옆 사람과의 긴장 섞인 대화는 게임으로 마음을 이끈다. 작은 놀이판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승부. 컴퓨터나 콘솔 게임과는 또 다른 매력의 보드게임이다. 사부작놀이협동조합(이하 사부작)의 정희권 대표는 국내 보드게임 1세대로, 부산에서 우리나라만의 개성 있는 보드게임을 개발하고 발굴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사부작놀이협동조합을 설립한 과정이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보드게임이 꽤 일찍 도입되었음도, 시장 구조가 잘못되어 있는 상황이다. 몇몇 거대 유통업체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 게임콘텐츠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성장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거다. 농사짓는 분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유통사가 제작사에 무리한 납품가를 요구하고, 자본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하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개발 노하우마저 쌓기 힘든 형편이다. 해외는 보드게임 문화가 뿌리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업을 영위하고 노하우도 쌓을 수 있다. 업체들 간 협력 모델도 잘 되어 있고.

 

해외의 보드게임 박람회를 다녀보면 국내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업체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쌈짓돈 털어 용감하게 외국에 나왔다가, 박람회 동안 절망감만 느끼고 돌아간다는 거다. 이런 게 매년 반복이 된다.

 

사실 보드게임 산업은 전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년 10~15%씩 성장하고 있다. 가디언이나 이코노미스트 등 유력 언론에서도 특집기사를 싣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열정적인 소기업이 있음에도 잘못 디자인된 산업구조로 인해 콘텐츠 제작사들이 자빠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게임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토대를 만들자, 한번 생태계를 만들어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3, 4년 전부터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들끼리 매달 모였다.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부산으로 오게 된 건 한 대학의 혁신센터에서 부산의 게임회사들을 컨설팅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다 행정조직과 별로 안 맞아서 그만뒀다. 개인적으로 게임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한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의 후반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렇다면 부산에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해외 박람회에서 만난 이름 없는 업체 중에 부산업체가 많았었다. 부산 사람들의 기질이랄까. 용감한 분들이었다.

 

서울은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듣는 정보라도 있는데, 지방은 그런 기회도 적지 않나. 알량한 생각이긴 하지만, 보드게임 1세대로서 나의 노하우와 라인으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기여하고 싶었다. 다행히 부산의 기관 측에서 보드게임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관련 행사 등을 많이 만들고 있다. 이번에 열리는 2017 보드게임 페스티벌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행사다. (이 인터뷰는 행사 개최 이전에 진행되었으며, 행사는 1216~17일 양 일간 진행되었습니다.)

 

 

 

보드게임 제작자를 위한 생태계 구축에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먼저 좋은 보드게임을 만드는 거다. 좋은 게임은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게임의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핵심이다. 테마, 그래픽, 그림은 다음 이야기다. 최근 세계적으로 동아시아 보드게임에 관심이 높은데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특히 관심이 크다.

 

그래서 사부작에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정기적 모임을 갖고 플레이 테스트를 한다. 처음에 실험 삼아 매주 모이자고 했는데, 정말 모이더라.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거다. 혼자서 고민하기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평도 받고 깨지기도 해야 콘텐츠는 발전한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 없이 좋은 게임이 생길 확률은 고철더미가 바람을 맞아 슈퍼카로 변할 확률과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한다.

 

일본의 작은 아마추어 전시회가 굉장히 커진 경우도 있는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콘텐츠를 제대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게임의 질이 올라가다보니 전시회 규모도 커지고, 게임의 제작 라인이나 공장의 규모가 함께 커진 거다. 보드게임은 파급효과가 디지털 게임보다 다양하다. 제품을 하나 만들려면 종이부터 인쇄, 사출 등 다양한 생산 라인이 필요하고, 물리적으로 전시할 공간도 필요하다. 다양한 산업군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음은 게임을 대중에게 내놓을 길을 찾아야한다. 운 좋게 제대로 된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좋은데, 그게 쉽지 않다. 보통 지방의 아이디어 좋은 업체가 있으면, 서울의 유통업체가 마치 계약할 것처럼 하고선, 미계약 상태에서 시제품과 아이디어를 갖고 해외에 나간다. 그리고 제작업체에는 자기들이 계약할 거니까, 크라우드 펀딩이나 다른 유통라인과 계약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시장 반응이 좋지 않으면 몇 개월 살펴보다가 제작업체에 다시 돌려준다. 그러면 콘텐츠를 만든 사람들은 기회비용을 날리는 거다.

 

그래서 사부작에서는 자체적으로 해외 전시회를 제작업체와 함께 나간다. 독일 에센 슈필(ESSEN SPIEL) 박람회라고, 세계 최대의 보드게임 박람회가 있는데 2년 째 나가고 있다. 일본의 게임 마켓에도 참가한다. 거리도 가깝고, 일본에는 외국 업체들이 모인다. 씁쓸하긴 하다.

 

사실 우리나라가 현대적인 보드게임을 일본보다 먼저 시작했다. 수년 전에 해외 박람회를 가보면 콘텐츠진흥원에서 수천만 원을 들여서 부스를 냈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보면서 열심히 한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스의 수혜자가 콘텐츠 제작사가 아니라 유통회사였다. 반면에 일본은 보드게임에 낯설 때부터 작은 콘텐츠 제작사들이 돈을 모아 제일 작은 부스로 참가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완전히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공동관은 10년 전 참가사와 지금 참가사가 똑같다. 하지만 그 작았던 일본 부스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장소가 됐다. 본질을 잡았기 때문이다. 가보면 앉을 자리도 없다. 해외 업체의 매니저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서서 이야기 나누고, 계약을 한다. 거기서 스타 작가들이 배출이 되고, 스타 기업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걸 보면서 우리는 부산에서 한번 해보려고 한다. 혁신은 변경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나.

 

 

우리나라 보드게임 시장의 문제점을 짚어 주셨는데

 

1995년 카탄의 개척자라는 독일 게임이 출시된 이후 현대적인 창작 보드게임들이 성장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에 보드게임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 보드게임방이라는 게 생기면서부터다. 근데 보드게임방이라는 게 무리한 수익모델이다. 초기 프랜차이즈를 차려주고 인테리어 비용으로 수익을 뽑은 사람들만 돈을 벌고 업계를 떠나버렸다. 그러다보니 보드게임의 토양이 약했던 거다. 그럼에도 이게 일종의 뿌리가 됐다. 지금 보드게임 시장의 핵심 구매층은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모들인데, 당시 그 보드게임방을 통해 콘텐츠를 접했던 이들이다. 굉장히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산업인 셈이다.

 

2013년도에 프랑스 보드게임 차트에서 한국 사람이 1등을 했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 보드게임계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Spiel des Jahres(올해의 게임상)’에서도 한국인이 비평가 상에 선정됐다. 굉장히 큰 뉴스임에도 상을 받은 회사가 영세해 홍보가 어렵다. 요는 열정적인 업체는 있는데 산업구조가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해 개성 있는 콘텐츠 제작사들이 살아남기 어렵다. 보드게임은 일반적인 스타트업하고는 달리 긴 호흡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해결방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우리나라에 게임을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게임 프로듀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처음엔 게임디자이너로 시작을 했는데 점점 게임 프로듀서로 변하려 한다. 게임 프로듀서는 게임을 만들어 본 사람만이 할 수가 있다. 게임의 허점을 알고, 시장도 알고 있어야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 된다. 우리나라 게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색깔이 없다는 거다.

 

동아시아 게임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는 이질적인 문화에서 나오는 참신함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에는 이미 세계적인 게임 디자이너가 생기고 있다. 아쉬운 건 우리나라는 보드게임을 일찍 시작했음에도 자기 스타일을 가진 게임을 찾기 어렵다는 거다. 많이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오만한 말이 없는 것 같다. 솔직히 세계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정부 지원 사업으로 기괴한 콘텐츠가 가끔 나오는 게 바로 그런 오만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요즘 프랑스 게임들이 크게 약진하는데, 한국 게임들이 프랑스 게임을 흉내 내고 있다. 정답을 쫓아가는 콘텐츠라는 건 의미가 없다.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 안에서 자신만의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사부작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바도 그런 사람들, 그런 회사들이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다.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안 하고 기존의 방식으로 돈을 벌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기 색깔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실패하더라도 남는 게 있지 않겠나.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가

 

나는 두 가지 관점으로 게임을 본다. 하나는 스토리텔링이고, 하나는 룰의 집합이다. 좋은 스토리텔링은 어떤 재미 요소를 갖고 있는지, 예를 들면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그게 왜 재밌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눈여겨본다. 그 요소를 게임의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에 관심이 있다. 지속적으로 동화, 만화, 영화, 디지털게임 등을 보드게임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개인적인 작업이자 콘텐츠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집 같은 거다.

 

회사로서는 지역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살아남아, 평생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될 협동조합으로 성장해가고 싶다. 앞으로 독립 콘텐츠 업체들의 제품을 사부작을 통해 유통하려고도 한다. 기존의 거대 유통사와 달리 사부작이 투자하고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이미 내년 프로젝트가 꽉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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