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ART-UP STORY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_<버진그룹>

<사진 :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CEO>


일과 삶을 즐겁게, 세계 최고의 괴짜 CEO


  버진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도발적인 자기 홍보와 강렬한 에너지로 괴짜 CEO로 불리는 인물이다. 기행에 가까운 그의 도전은 개인적 개성을 넘어 그가 이끄는 기업의 혁신적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 생성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첨단기술을 세상에 선보이거나 미지의 사업 분야를 개척한 것도 아니었던 그가 연매출 80억 달러의 다국적 기업을 일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195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리처드 브랜슨은 부모로부터 독특한 독립심을 배우며 자라났다. 그의 부모는 소년 리처드를 할머니 집에 데려가면서, 집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그를 내려놓고 걸어오게 하곤 했다. 당시 길을 잃기도 했다고 고백하는 브랜슨은 그런 경험들을 통해 모험심을 길러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팔던 종이 박스 등을 브랜슨에게 주며 가지고 놀게 하기도 했다. 그녀가 브랜슨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후회 없이 살라’였다. 지나간 실패에 연연해하지 말고 다가올 새로운 단계로 도전해가라는 의미였다. 난독증으로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던 그에게 용기를 준 이도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믿음과 격려로 자신만의 목표의식과 창의성을 키워가던 브랜슨은 16살에 기숙학교를 중퇴하고 학생잡지 <스튜던트>를 창간한다. 자신의 난독증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사업가보다는 기자나 편집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잡지가 단순한 소식지에 그치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문화와 사상을 전달하고자 노력했고, 직접 편지를 쓰기도 하는 등 끈질긴 섭외 끝에 존 레논, 믹 재거, 장 폴 사르트르 등 당시의 명사들과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리처드 브랜슨이 어린 시절 발간한 잡지 'STUDENT'>


  그러나 판매 부수의 상승과는 별개로 잡지 사업은 점점 어려워졌다. 브랜슨은 매체의 명성이나 재정적 자립이 있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업가의 마음가짐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실패의 위기에서 독자들의 기호를 연구한 그는 잡지의 주 독자층인 젊은 학생들이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학생들이 좋아할 음반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잡지에 음반을 할인 구입할 수 있는 광고를 싣기 시작했다. 이 아이디어는 향후 브랜슨이 버진 레코드를 설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970년 음반 사업에 뛰어든 그는 섹스 피스톨즈, 컬처 클럽, 마이크 올드필드 등을 스타로 만들어내며 단숨에 도약한다. 이후 버진 레코드는 롤링스톤스, 필 콜린스, 자넷 잭슨 등과 계약하며 세계 최대의 독립 음반사로 성장한다. 브랜슨은 한 발 더 나아가 버진 음반 매장에 음반을 사기 전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다른 음반사와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상품이 아닌 즐거움과 문화를 판매한다는 현대적 의미의 사업 모델을 이때부터 구축하고 선도한 것이다. 버진 레코드의 비즈니스 모델은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반응을 얻으며 경쟁 업체를 압도해나갔다.

  브랜슨은 버진 레코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항공, 철도, 운수, 음료, 이동통신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항공사업을 시작하게 된 에피소드도 독특하다. 어느 날 휴가를 떠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그는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목적지에 가지 못해 곤란해 하는 것을 본 브랜슨은 곧 보잉 747기를 전세낸 후, 사람들을 모아 비용을 나눠 내게 했다. 버진 애틀랜틱항공의 시초였다.

  영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 항공사업은 브랜슨에게도 힘든 분야였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브리티시 항공 등을 위시로 한 거대 항공사들의 견제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당시 브랜슨에게 멘토가 되어준 인물이 프레디 레이커다. 이미 1960년대에 장거리 저가 노선을 개발한 레이커는 브랜슨에게 기존 항공사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후에 브랜슨은 버진 항공의 항공기에 프레디 레이커의 이름을 붙여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사진 : 창립초기 버진레코드 매장>


  브랜슨은 사업에 도전하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재미를 꼽는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일터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자기의 삶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는 그의 인생의 첫 원칙과도 맞닿아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의무감으로 한 적이 없다고 밝힌다. 사업에서 재미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새로운 사업에 모험을 거는 것도 그만의 철학이다

  이 과정에서 경영에 실패해 사업을 멈춘 분야도 적지 않았다. 기존과는 다른 관행을 시도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에너지만큼은 여전하다. 브랜슨은 사업의 기회를 버스에 비유하며 한 대를 놓치면 다음 차를 기다리면 된다고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후회 없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께 배운 정신이었다.

  브랜슨이 사업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 또 한 가지 원칙은 자신이 사업하는 분야에 미칠 환경적, 경제적 영향력이다. 그는 다른 나라에 사업을 진출할 때 그 나라의 산업 환경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자연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따지기도 한다. 한 예로 그는 남아공의 한 피트니스클럽 프랜차이즈가 폐업을 하며 수천 명이 실직할 위기에 처하자 넬슨 만델라의 전화를 받고 자신의 피트니스클럽 브랜드를 남아공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현재 그는 2007년 만델라, 코피 아난, 아웅산 수 치 등과 함께 세계지도자모임인 원로회를 설립하고 환경을 위한 글로벌기업 회의에서 활동하는 등 환경문제와 자선사업에 꾸준한 관심과 행동을 보이고 있다. 과장된 모험담만을 만들어낸다는 이미지와는 또 다른 그의 일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