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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STORY

메리 케이 애시(Mary Kay Ash)_<메리 케이Mary Kay>


<사진 : 메리케이 화장품의 대표적 이미지인 핑크캐딜락>


상대에게 먼저 귀 기울여라핑크 리더십의 여인

 

  화장품 브랜드 메리 케이는 미국 내 스킨케어 화장품 점유율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으로, 실적이 뛰어난 자사 뷰티 컨설턴트에게 특유의 핑크색 자동차를 주는 것으로 이름 나 있다. 무엇보다 메리 케이는 여성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매년 손꼽히는 곳이다. 50여 년 전 중년의 한 여성이 세운 화장품 가게가, 사원들과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세계 3대 화장품 직판업체로 성장한 것이다.  

  메리 케이의 창업주 메리 케이 애시는 19635,000달러의 돈과 갓 스물을 맞은 아들의 도움으로 작은 화장품 가게를 차린다. 그녀의 나이 마흔 여덟. 동료 남자 직원들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연봉을 아껴 모았던 적금이었다. 그녀의 도전에는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그녀 자신이 겪었던 기업 내 남녀불평등을 타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25년 간 세일즈 비즈니스 분야에 종사하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에게 교육받은 한 남성이 승진해 트레이닝 디렉터인 본인보다 두 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을 보고 회사를 나오게 된다. 처음 그녀는 여성들이 더 많은 사회적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쓰기도 했지만 곧 실제적인 움직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메리 케이가 회사를 세우며 내세운 두 가지 철학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상대를 대하라는 황금률 원칙과 먼저 타인에게 베풀고 배려하라는 고-기브 정신이었다. 상대의 가슴에 나는 존중받고 싶다라는 목걸이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며 직원들을 대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나 역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녀는 직원들과의 선약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의 리셉션 초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화장품 판매에 뷰티 컨설턴트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메리 케이이다. 단순히 화장품을 유통하는 존재를 넘어 소비자들에게 개개인에 맞춰진 전문적인 조언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판매 역시 컨설턴트마다 독립적으로 이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판매 방식의 문제점이 발생되기도 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리고 메리 케이의 이런 시스템의 바탕에는 기업의 구성원을 유기적 공동체로 보는 창업가 메리 케이 애시만의 시각이 깔려 있었다. 그녀는 P&L을 이익과 손해(Profit & Loss)가 아닌 사람과 사랑(People & Love)로 해석하며 회사의 이익을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 말했다


<사진제공 : 메리케이 화장품>


  그녀는 회사 구성원들에게 투자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직원과 고객들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가족 공동체를 기업의 궁극적 목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그녀의 방법은 인정과 경청이었다. 그녀는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우월함과 위대함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라 말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핑크색 자동차와 같은 기업의 상징적인 성과 보상제를 확립한다.

  또한 그녀는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사람을 대했다. 그녀는 북적대는 방에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두 사람만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방에 고릴라가 들어온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집중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녀의 이런 자세와 리더십은 미국 비즈니스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1985년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메리 케이 역시 94년 미국 최고의 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메리 케이 애시는 현재도 여성 비즈니스 리더십의 상징적 존재로 손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어머니 리더십으로 성장한 메리 케이는 여전히 직원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일하고 싶은 회사로 인정받은 원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