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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STORY

야나이 다다시(柳井正)_<유니클로(UNIQLO)>

                                                                           야나이 다다시(사진:유니클로)


혁신과 도전으로 레드오션을 극복하다



  국내 의류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경쟁이 치열해 언제나 레드 오션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그런데 지난 201111, 명동에 아시아 최대 매장을 오픈해 하루 약 13억 원, 한 해 4200억 원에 달하는 국내 매출을 올린 브랜드가 있다. 다양한 혁신을 통해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rel Brand)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 캐주얼의류, ‘유니클로(UNIQLO)’이다.

 

 유니클로의 창업자이자 <패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그룹의 회장이기도 한 야나이 다다시(柳井正)는 이미 팽창할 대로 팽창한 의류산업에 뛰어들어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혁신가로, 현재 일본 최고 자산가 반열에 수차례 이름이 올린 경영자다. 그가 세운 유니클로는 경영 및 운영 방식에 있어서 타 의류업계와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실력위주의 인사정책을 실시해 직원의 학력, 성별, 나이, 장애, 국적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서 유니클로는 2~30대의 젊은 점장이 수십, 수백의 직원들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유니클로가 직원을 뽑을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부분은 그가 CEO를 꿈꾸는 사람인지 아닌지의 여부다. 또한 본사인 <패스트 리테일링>의 경우 직원들은 개인책상이 아니라 사무실에 마련되어 있는 라운드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업무를 시작한다. 회사 한 편에는 대화나 잡담 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또한 야근이 없어 밤 7시면 건물의 모든 조명이 꺼진다.


  현재 유니클로는 스페인에서 출발한 자라(ZARA)와 스웨덴 출신의 H&M, 미국의 포에버21 등 전 세계 유수의 SPA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인 브랜드는 뜻밖에도 1949년 일본 혼슈 야마구치현의 작은 도시 우베(宇部) 내 소규모 양복점, ‘오고리상사로부터 출발했다.





  야나이 회장은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자스코라는 유통업체에 입사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에 싫증을 느껴 9개월 만에 회사를 나왔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경영하던 작은 의류회사인 오고리상사에 들어갔다. 2003년 출간한 야나이 회장의 자서전 일승구패(一勝九敗)에는 그가 입사 후 대기업 근무 경험을 살려 회사 일에 이것저것 간여했는데, 판매점 직원 7명 중 6명이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생겨, 남은 직원 한 명과 함께 점포를 운영해야 했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그는 크나큰 책임감과 함께 자재 구입부터 회계까지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맡아 하면서 착착 사업을 배워나갔다. 한편으로는 매해 GAP, 베네통 등 해외 의류브랜드를 찾아다니며 철저한 시장조사를 펼쳤다. 어차피 할 거라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대로 된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오고리상사는 일본 의류시장의 대세를 따라 남성복을 취급했었다. 그러나 야나이 회장은 12년 간 의류 사업을 하며 캐주얼의류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경쟁이 몹시 치열했던 일본의 의류시장은 이미 저무는 해와 같은 사양사업이었지만, 그는 역으로 생각했다. 의류업계의 기존 관행들을 벗어나 새로운 전략으로 사업에 임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1982, 서른 다섯의 야나이는 히로시마 시에 유니크한 의류라는 뜻의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 1호점을 열었다. 이후 198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본격적으로 캐주얼의류 시장에 뛰어든다. 그는 옷을 패션이 아닌 생필품이라고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일 먹는 밥처럼 인간생활에 가까운 옷이 항상 유행에 따라 변하는 상황에 의문을 품었다. 그에겐 옷 역시 생필품처럼 쉽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야 했다. 야나이는 곧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입을 수 있는 기본적인 캐주얼의류를 업계 최저 가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품의 질만 담보할 수 있다면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예상은 적중했고, 소비자들은 값싸고 질 좋은 브랜드의 탄생을 반겼다.


  유니클로는 제조·생산·판매를 한 번에 하는 SPA 방식을 통해 생산단가와 유통마진 등을 줄여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공급한다. 유니클로의 캐치프레이즈는 'MADE FOR ALL', 이에 따라 유니클로의 매장에는 남녀노소가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기본적인 캐주얼의류 아이템들이 색상, 사이즈별로 진열되어 있다. 또한 야나이는 고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스스로 필요한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매장을 구성했다. 따로 접객이 불필요해 비용절감도 가능했다. 야나이 회장은 장사라는 것이 온통 파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비즈니스는 고객이 물건을 사주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파는 것에만 집중하는 상업주의는 잘못된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그는 제품에 브랜드 로고를 넣지 않았다. 매장 개장 시간도 기존의 출근, 등교 시간이 아닌 오전 6시로 조정했다. 유니클로 매장은 색다른 콘셉트에 매료된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야나이 회장은 2002년 야나이는 기업의 대표이자 CEO로 취임했다. 유니클로는 2001년 영국 내에 4개의 매장을 열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한국, 중국, 홍콩, 프랑스, 미국, 호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16개국 1,4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계속해서 제품의 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소비자들에게 어필해 왔다. 1999년 방한복 내피로 활용되었던 플리스를 외피로 변형한 제품은 2,6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8년 개발한 히트텍 역시 유니클로의 성공 신화 중 하나다. 당시 가을 및 겨울 상품으로 출시됐던 히트텍은 가을이 가기 전에 2,800만 장이 매진됐다. 최근에는 항균, 방취 및 소취 기능의 이너웨어 에어리즘(AIRism)을 개발했다. 아이템 이름을 통해 제품의 소재와 기능을 소비자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유니클로의 전략은 의류 시장에서 유니클로가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주 요인이 됐다.


  이런 유니클로도 항상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0년 유니클로는 좋은 재질로 여러 가지 디자인의 청바지를 출시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실속을 강조한 브랜드의 콘셉트와 프리미엄 라인업이 맞지 않은 것이다. 당시 야나이 회장은 고집을 꺾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유니클로 본래의 전략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며 실패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된다. 실패할거라면 빨리 실패를 경험하는 편이 낫다. 비즈니스는 이론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좋은 재질, 심플한 디자인,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다양한 제품을 통해 유니클로는 타 의류 브랜드와는 차별화 된 자신만의 지위를 확보했다. 일본 지방의 작은 남성복 가게로 출발, 세계적인 패션기업으로 도약하기까지 유니클로의 성공에는 야나이 회장의 혁신적인 사고방식과 도전 정신이 바탕이 됐다. 그는 소비자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았다. ‘거품을 뺀 저렴한 가격에 입기 편한 옷이라는 단순한 명제는 고객의 마음을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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