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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STORY

혼다 소이치로_<혼다>

                                                                         <사진 : 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혼다 소이치로>

 

소유와 경영의 철저한 분리를 실천하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혼다(HONDA)>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가이자 누구보다 뛰어난 기술자이다. 2003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조사한 가장 존경할 만한 일본 경영자에서 마쓰시타 전기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더불어 공동 1위에 오른 혼다 소이치로는 일본에서 가장 존경 받는 경영자이며, 크게는 일본이 기술강국이자 경제대국으로 크게 발돋움할 수 있도록 브랜드 가치를 높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06년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 작은 마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0대 때부터 자동차 수리공장인 아트상회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곳에서 6년 동안 일하며 재능과 근무 실적을 인정받아 분점 형태로 독립하게 되었다. 자동차 수리업은 전쟁 중에도 별 탈 없이 잘 유지되었고 그는 그 사이 결혼도 했다. 그러나 이 때 한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지진이 일어나 공장이 전부 무너진 것이다.


 

                                                                     <사진출처 : 혼다 홈페이지>

 

  그러나 그는 일본이 패전하고 난 다음 해에 자본금 100만 엔으로 오토바이를 만드는 회사를 일으켰다. 이것이 현재 <혼다>의 모체가 된 혼다기연공업주식회사. 그 이듬해에는 창업 동지이자 혼다 부사장까지 오른 후지사와 다케오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회사 운영은 일절 다케오에게 위임하고 본인은 기술개발에 더욱 몰두했다 

  그의 자서전 나의 생각에는 엔진을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엔진이 돌아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잠을 잘 수 없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는 중요한 모임이나 행사도 잊을 만큼 미련할 정도로 연구에 매달렸고, 설계에 있어서만큼은 당시 두말 할 것 없는 최고의 기술자였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혼다가 가진 기술력 역시 최고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슈퍼카브이다. 국수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그의 형이 한 손으로도 운전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슈퍼카브는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왼쪽 페달 변속기의 시초이기도 하다. 당시 50cc2기통이 보편적이었던 엔진에 비한다면 슈퍼카브의 엔진은 50cc 4기통으로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사진 : c70을 타고 있는 혼다 소이지로, 혼다 홈페이지>

 

  소이치로는 19714월 혼다기술연구소의 사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신진 기술자들을 독려하고 그들에게 자기 지식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2년 뒤 197310, 창업의 길을 함께 한 부사장과 함께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회장으로 물러나 기업 운영에 왕왕 간섭하는 게 아니라 경영 자체에서 손을 뗀 것이다. 은퇴하면서 대부분의 주식도 회사에 무상으로 증여했다. 다른 기업들과는 다른 이례적인 은퇴의 예를 보여준 셈이다.

  누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고,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도 결국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시기가 있다. 그러나 기업이 궤도에 올라 있는 상태에서 물러날 시기를 제대로 판단하는 경영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혼다의 사장과 부사장이 아무런 미련 없이 단호한 결단과 함께 동반 퇴직한 사건은 한 동안 크게 회자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를 신화적 존재로 만든 대 사건이었다.

 

 

                                                                   <사진출처 : 혼다 홈페이지>

 

  심심치 않은 경영권 싸움으로 종종 떠들썩해지는 국내 기업 문화와 비교한다면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소이치로는 함께 창업에 참여했던 형제들을 사직시키고 이후 혼다성을 쓰는 누구도 회사에 입사시키지 않음으로써 회사는 내 것이 아니다라는 자신의 소신을 철저히 지켜나갔다.

  199185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소이치로는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는 생전에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내가 거창한 장례식을 해서 교통정체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절대 내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고 주변에 당부하곤 했는데, 실제 장례식 역시 가족과 친척, 혼다 역대 사장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진행되었다. 덕분에 부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문상객들이 돌려보내는 광경이 연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진 : 동경에 위치한 혼다 본사 건물>

 

  그는 회사의 대표이사로 있는 동안 자신의 철칙들을 확고히 지켰다. 우선, 혈육을 회사로 끌어들이는 세습경영을 반대했다. 현재까지도 이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회사 내에서 혼다라는 성을 가진 임원이나 직원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운명적으로 평생의 동지인 다케오라는 사업파트너를 만나 본인은 자신의 역할인 생산 및 연구에 매진하고 경영은 전문가인 후지사와 다케오에게 맡겨 소유와 경영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물러나야 할 시기를 알고 단호하게 은퇴를 결심했다. 박수칠 때 떠나는 쉽지 않은 미덕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소이치로는 1973CEO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혼다의 새로운 미래를 격려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많은 꿈을 이뤘지만, 실패도 많이 했다. 그러나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실패로 지금의 혼다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창립자라는 위치에서 가장 노출되기 쉬운 소유에 대한 미련을 완전하게 끊었던 혼다 소이치로. 동양인 최초로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1989년 이름이 헌정되기도 한 그의 열정이 수많은 직원들을 품은 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혼다>를 만들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